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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텀데슬]JUSTICE! <3>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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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텀데슬]JUSTICE! <3>

하늘로켓 2016. 8. 24. 21:53

JUSTICE! <1> : http://haneulrocket.tistory.com/2

JUSTICE! <2> : http://haneulrocket.tistory.com/3

 

JUSTICE! <3> 무삭제 : http://haneulrocket.tistory.com/4

무삭제 포스팅 비밀번호는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0219050 

↑화조풍월 4권 페이지 수 '세자리 숫자'입니다. PC버전으로 봐야 보이네요 ;ㅅ;

 

 

 

 

 

 

 

 

 사건 파일이 방의 반 이상을 차지했다. 한두 뭉치씩 도착할 때는 의욕에 불타 있었지만 이제는 서류가 턱, 얹어지는 소리만 들어도 신물이 올라올 것 같았다.

 

 “내일 피해자들 좀 만나게 해줘.”
 “네에에.”

 

 크림이 힘없이 대답했다. 종이를 내려놓고 모니터 앞으로 자리를 옮긴 얼굴이 퀭했다. 렌즈를 끼지 않고 외출하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다던 신념이 모니터와의 싸움에서 패해 그녀는 어제부터 안경을 끼고 출근하기 시작했다. 두꺼운 안경알 속 피로에 찌든 눈이 피해자들과의 약속을 잡기 위해 연락처 명단을 찾았다.
 예상은 했지만 진전이 없는 나날이었다. 팬텀은 잠시 읽던 종이뭉치를 내려놓고 핸드폰을 두드렸다.

 

 「죽겠어요 ㅠㅠ」

 

 답장은 5분이 되지 않아 도착했다.

 

 「힘내십시오.」

 

 단정한 문장과 마침표까지 전부 보낸 이를 닮아 있었다.

 

 「단장님이 와서 뽀뽀라도 해주면 힘날 것 같은데요.」
 「성희롱입니다.」

 

 도저히 웃음이 나지 않는 서러운 농담이었다. 손목이라도 한 번 잡아봤으면 몰라. 성희롱이란 비난 때문이 아니라 정말 손목 한 번 못 잡아봐서 억울했다.
 성희롱 비슷한 것이라도 해보았으면 그의 그늘진 얼굴이 조금이나마 밝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리운 임의 얼굴 한 번 볼 수 없었다.
 광장에서의 우연한 만남 그 뒤로 그는 정말로 적극적인 대시를 했다.

 

 문자로.

 

 미친 듯이 바쁘면서, 미친 듯이 진전이 없었다. 수사도, 그의 (아직 시작되지 않은)연애도. 데몬은 의외로 착실하게 그의 문자에 답장을 해 주었다. 하지만 단지 그 뿐, 텍스트로 된 일차원의 단장은 엄지손가락으로 꾹꾹 눌러주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내 진가는 직접 만나 에스코트 할 때 발휘된다고. 그러나 차마 그 투덜거림을 입 밖에 낼 수는 없었다. 사흘째 햇빛 끄트머리도 구경 못한 팀원들이 들으면 전화번호부만한 사건 파일이 머리로 날아올지도 모르는 노릇이었다.

 

 그는 생각보다 성실하게 답장을 해줬다. 묻는 질문엔 대부분 대답을 했고, 시덥지 않은 농담도 그 나름의 반응을 보였다. 둘 다 각자의 일이 있는지라 10대 소녀처럼 하루 종일 핸드폰을 잡고 있을 순 없어 짧은 간격으로 메시지를 주고받다가도 뚝 끊기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지금처럼. 그러면 서로 그러려니 하고 기다리고, 간격이 길어지면 팬텀이 「뭐 해요?」 혹은 「바빠요?」와 같은 말로 다시 화두를 열곤 했다.

 자리에서 일어난 팬텀은 내일 오전에 피해자 8명 정도가 미팅에 응했다는 크림의 보고를 듣고, 범인이 2살 때 만들어진 계좌부터 한 자 한 자 내역을 다 살폈다는 크리스틴의 퀭한 얼굴을 향해 위로를 건넸다. 그리고 자신은 인신매매 거래가 이루어졌던 에레브 제2부두 근처의 암시장 목록 파일을 책상으로 끌어 왔다. 가까운 곳에 비밀리에 경매가 이뤄지는 장소가 있단 걸 떠올리고 요주의 장소라 생각해 두었던 곳이다. 팬텀은 자료를 옆으로 빼 두었다. 직접 가볼 필요가 있다 생각한 장소 목록들이다. 그 더미도 어느새 제법 두툼해져 추려내야 하게 생겼다. 팬텀은 다음 자료를 꺼내 들었다.

 

 

 

 

 

 집중해서 읽다 보니 시간이 꽤 흘렀다. 팬텀의 집중을 똑, 똑 하고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깨뜨렸다. 종이 넘기는 소리 외엔 적막했던 방 안에 오랜만에 울린 소리였다. 일을 멈춘 네 사람이 시선을 마주치고 의아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였다.
 전 모르겠는데요? 저도 잘. 시선을 교환하는 사이 다시 한 번 똑, 똑 하고 문이 두드려졌다. 막내인 시나몬이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었다.

 

 “네에. 나가요. …어?”

 

 문 앞에는 갑작스러운 소리만큼이나 갑작스러운 인물이 서 있었다. 사무실의 세 사람 역시 크림과 마찬가지로 눈을 깜빡였다.
 사무실 내부를 둘러본 데몬은 곤란한 미소를 지었다. 이런.

 

 “다른 분들이 계실 거라고 생각을 못해서.”

 

 그의 한 손엔 비닐봉지가 들려 있었고 반투명한 비닐 사이로 포장된 플라스틱 용기가 보였다. 팬텀이 눈치 빠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 앞 팀원들의 어깨를 두드렸다.

 

 “레이디들, 식사 좀 하고 오시지요. 손님맞이는 내가 할 테니.”

 

 보아하니 그가 인원수를 고려하지 않은 무언가를 준비해 온 듯하다. 크림, 시나몬, 크리스틴 세 사람은 저들이 아는 것보다 안면이 더 있어 보이는 두 사람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자리에 있기도 민망한 상황이라 그럼 머리도 식힐 겸 다녀오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착실하게 법인 카드를 받아 가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앉으세요.”

 

 팬텀은 서류 더미의 습격에서 그나마 무사한 소파 테이블을 가리켰다. 그가 대각선 자리에 앉자 데몬은 가지고 온 봉투를 내려놓았다. 팬텀이 열어보자 시내의 고급 초밥집 로고가 박힌 도시락 두 개와 음료수가 나왔다.

 

 “배터리가 많이 부족하신 것 같아 보였습니다.”

 

 뚜껑을 여니 두툼한 생선회가 얹어진 초밥이 줄을 지어 담겨 있다. 가지런히 윤기가 도는 모습이 숨 가쁘게 일하는 동안 잊었던 식욕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응원 도시락 배달이라니. 생각지 못한 감동인데요, 단장님.”
 “감동씩이나요.”

 

 데몬이 봉투 안에서 젓가락을 찾아 내밀며 대답했다. 목소리엔 웃음기가 묻어 있다.

 

 “진짭니다. 만약 단장님이 직접 만든 도시락이었으면 이 자리에서 무릎 꿇고 프러포즈 했을 거예요.”
 “한 입 드시고 다시 철회하셨을 겁니다.”
 “맛보다는 마음이죠. 단장님은 왜 안 드십니까?”
 “다 검사님 드시라고 사온 겁니다. 뭘 좋아하시는지 몰라서 일단 종류별로.”
 “네? 아… 이쪽은 다른 거였군요.”

 

 다른 도시락에선 날생선 없이 삶은 문어와 새우, 구운 소고기 등을 재료로 한 초밥이 나왔다. 사무실임을 고려한 깔끔한 메뉴 선정도 그렇고, 꽤나 배려가 넘치는 도시락이었다.
 팬텀이 혼자 먹기엔 많다 하자 데몬도 젓가락을 들었다. 붉은 입술 안으로 하얀 생선살과 밥알이 쏙 들어갔다. 그가 저를 쳐다보고만 있자 데몬이 볼을 움직이며 먹으라고 손짓을 했다.

 

 “단장님, 원래 이렇게 작업 거는 남자에게 관대하십니까?”

 

 팬텀이 물었다. 그가 보인 친절이 싫은 건 아니었지만 몇 번 안본 사람에게 일터로 도시락을 가져다 줄 성격으로는 도저히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음, 데몬이 입안의 음식물을 넘기며 잠시 뜸을 들였다.

 

 “사실 좀 미안한 생각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뭐가 말입니까?”
 “군에 범인 넘기기 전에 숨기는 것 더 없냐고 고문이라도 할 걸, 하고.”
 “여기 검찰청입니다만?”

 

 데몬이 아, 실수. 하고 웃었다. 물론 전혀 실수한 얼굴이 아니었다.

 

 “기록이 남지 않는 작전에 한해 종종 있는 일입니다. 검거 과정이었다고 하면 어느 정도 폭력이 용인되니 합법적인 고문도 가능합니다. 체포만 하고 끝낸 건 마무리가 조금 허술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지금 심각한 군 기밀을 들은 것 같은데요.”

 

 내가 총이랑 수갑을 어디 뒀더라. 팬텀이 장난스럽게 말했다. 데몬도 웃음으로 답했다. 팬텀이 권총 대신 젓가락 끝으로 데몬을 가리켰다.

 

 “이전에도 말씀드렸지만 단장님은 체포까지 하셨으면 할 일 훌륭히 마치신 거고, 나머지는 제가 할 일입니다.”

 

 남겨진 일이 아무리 진흙탕이어도 재판에서 범인의 처우가 결정되기까지 온전히 사법부가 떠맡아야 할 부분이다. 반면에 그는 단지 인질 구출 미션을 받은 요원일 뿐이니 그 외의 일에 대해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오히려 총격전 등 거친 전투 없이 범인을 검거해 현장을 깔끔하게 보존해 줬으니 검찰 측에선 감사해야 할 판이었다.

 

 “알겠습니다. 이제 정말 응원하며 재판 결과 기다리겠습니다.”
 “마음으로만 하지 말고, 응원 뽀뽀라도 해 주십시오. 힘나게.”

 

 팬텀이 볼을 내밀었다. 데몬이 픽 웃으며 특유의 미소를 짓는 모습이 그려졌다. 어이없단 듯이 타박하는 목소리 또한. 예상대로 옆에서 짧은 웃음소리가 났다.

 

 ‘쪽.’

 

 그러나 가까이에서 들린 것은 전혀 다른 소리였다. 그의 볼에 말캉한 것이 닿았다가 떨어졌다.

 

 놀라 옆을 돌아보자 데몬의 얼굴이 그의 옆에 바짝 붙어 있었다. 흰 콧대 아래 유난히 붉은 입술이 가운데로 살짝 모여 자리했다.

 시선이 마주한 채로 눈이 깜빡였다. 한 번, 두 번, 세 번.

 프라이팬에 술을 부은 것처럼 불꽃이 확 일었다.

 

 “……!”

 

 간신히 붙잡은 이성의 끝자락이 몸을 던져 불꽃을 꺼뜨렸다. 위험했다. 밤샘 날짜가 하루만 더 됐어도 티끌만 남은 이성마저 퍼레이드 불꽃놀이 하듯 펑펑 터져 불탔을 것이다.
 팬텀은 자신의 인내심에 박수를 보내며 마른세수를 했다.

 

 “저기, 단장님.”
 “네.”
 “…단 둘이 있는 방에서, 당신에게 관심 보이는 남자가 일주일 째 업무에 치여 금욕중인데 이런 짓 하는 거 아닙니다.”
 “해 달라 하셨잖습니까.”
 “진짜 할 줄 몰랐죠. 하아…….”

 

 한숨이 땅을 꺼뜨릴 기세였다. 온갖 어두운 상념이 잔뜩 묻어있다.

 

 “검사님.”
 “…왜요.”

 

 아직 손바닥에 고개를 묻은 채 대답하는 목소리가 처연하기 그지없었다. LED등이 환히 밝혀져 있는 사무실 안에 검은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것만 같다. 데몬이 팬텀의 팔을 잡아 당겼다.

 

 “잠깐 이쪽으로 와주시겠습니까.”

 

 팬텀을 부르며 데몬은 물병을 따 입안을 헹궜다. 입술 틈으로 나온 붉은 혀가 입 주변 이곳저곳을 배회했다. 그가 지시한 팬텀의 자리는 소파에 앉아 있는 데몬의 앞이었다. 테이블과 소파 사이 좁은 공간에 들어와 두 사람의 몸이 거의 붙듯 밀착했다.

 

 “무릎 꿇고 하는 게 정석이지만 다리가 아직 덜 나아서.”
 “…….”

 

 데몬이 팬텀을 올려다봤다. 혀로 충분히 적신 입술이 번들거렸다. 팬텀은 설마, 하면서도 마른 침을 삼켰다. 그의 바지춤 위에 손가락이 걸렸을 때 팬텀은 자신의 생각과 그가 하려는 것이 일치한단 걸 알았다. 팬텀의 하얗게 깨물린 입술이 뺨을 밀어 올리며 호선을 그렸다.

 

 “해도 됩니까?”
 “새삼 허락 받는 것도 웃긴데.”
 “그렇긴 합니다.”

 

 하얀 손가락 사이에서 앞섶이 소리 없이 열렸다. 동시에 팬텀의 손에 긴 붉은 머리카락이 엉겼다.

 

 

 

 

 

(삭제) 

 

 

 

 

 

 부드러운 손수건이 데몬의 젖은 얼굴 여기저기를 조심스럽게 닦았다. 그는 아직 여운이 가시지 않았는지 쌕쌕 숨을 고르며 시중을 받았다. 살짝 벌어진 입 안에 군데군데 흰 점액이 보였다. 생수로 손수건을 적신 팬텀이 여러 액체로 흥건했던 입가를 다시 한 번 꼼꼼히 문질렀다.

 

 “…매너가 좋으십니다.”

 

 데몬이 나른한 얼굴로 말했다. 여러 번 목 안쪽을 찔려선지 쇳소리가 섞여 있다. 팬텀이 뚜껑을 딴 생수병을 건넸다.

 

 “환상적인 서비스를 받았는데 당연합니다.”

 

 팬텀은 헝클어진 머리도 손빗으로 정리해 넘겨줬다. 부은 입술에 물병 주둥이가 닿았다 떨어졌다. 깨끗해진 입술 위로 눈가를 곱게 접은 팬텀의 얼굴이 가까워졌다. 입술과 입술이 닿기 직전, 데몬의 손이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았다. 팬텀의 입술이 그의 손바닥에 꾸욱 눌렸다. 의아한 눈을 한 팬텀의 어깨가 슬쩍 밀렸다.

 

 “제가 조금 보수적인 사람이라.”

 

 키스는 아직. 그가 덧붙였다. 팬텀의 눈썹이 살짝 휘어졌다.

 

 “방금 전까지 그런 난잡한 짓을 하고도?”
 “그건 뽀뽀였잖습니까.”

 

 입술이 볼에 닿으나 그곳에 닿으나 입과 피부가 닿으면 뽀뽀라는 논리였다. 어이가 없는 철학이지만 팬텀은 순순히 물러났다.

 

 “그럼 키스는 언제 할 수 있습니까.”
 “아직 수줍어서. 마음의 준비가 될 때 까지 기다려 주십시오.”
 “가끔 단장님 뒤로 꼬리가 아홉 개 쯤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별롭니까.”
 “아뇨. 여우같은 미인이라니 굉장히 취향입니다.”
 “매너가 좋으시다니까.”

 

 데몬이 옅게 웃었다.

 

 “어때요. 매너 좋고 능력 좋은 남자. 단장님 취향엔 맞습니까?”
 “재판 전까지 능력이 좋은지는 모르지 않습니까. 결과가 좋지 않으면 앞발로 때리고 도망칠  생각입니다.”
 “어마어마한 동기 부여가 되는 말이네요, 그거.”

 

 팬텀 역시 마주 웃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키스를 대신해 공기 중에서 얽혔다. 질척하게 맞닿은 시선은 문 바깥에서 들려온 노크 소리와 함께 조심스럽게 사그라들었다.

 평소와 같은 얼굴로 돌아온 데몬은 그럼 수고하시란 말을 남긴 채 사무실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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