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YROCKET
[팬텀데슬]JUSTICE! <1> 본문
BL주의
(짭)법조물, (답없는)수사물 지향, 일단은 로코
관련 분야의 전문 지식은 네이버 검색 수준에 훨씬 못미칩니다 ^ㅁㅠ
검사 팬텀 X 군인 데몬, 가상 제국 배경, AU
Prologue.
전대미문의 잔인한 인신매매 및 납치 강간 사건을 해결한 것은 특무대 소속의 젊은 군인 한 명이었다. 명령을 받은 제11사단의 단장은 사창가에서 몸을 파는 청년으로 위장해 범인의 저택에 잠입하는 파격적인 작전을 감행, 잠입 12시간 만에 모든 인질을 구출하고 범인 역시 산채로 검거해낸다. 구출 과정에서 피해자 어느 한 명도 부상을 입지 않은, 그 이상 완벽할 수 없는 성공적인 작전이었다.
사건은 황실 언론 팀의 통제 하에 주요 내용만 담아 ‘용맹한 군인이 몸을 사리지 않는 작전으로 십여 명의 소년·소녀를 구출한 사건’으로 보도되었다.
JUSTICE!
Written by. SKYROCKET
「저 년이, 저 걸레 같은 년이 깔려서 어떻게 앙앙댔는지 알아? 아주 질질 싸면서 좋다, 좋다 정신을 못 차리고 눈 까뒤집고 있었다고! 밑창 다 빠진 남창 새끼 같은 게 발정 났다고 좆 물고 정액 달라 씨발, 지랄을 했는데! 앞뒤로 울고불고 난리가……」
“어우, 귀가 썩을 것 같아.”
크림과 시나몬, 부서의 어린 팀원 둘이 몸서리를 쳤다. 비교적 차분한 크리스틴 역시 진한 눈썹을 낚싯바늘 모양으로 휘었다.
찌푸린 시선이 모여 있는 구식의 흑백 화면 속엔 두 사람이 책상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다. 무심하게 상대방을 내려다보는 장발의 남자 쪽이 작전에 투입된 군인, 얼굴에 핏대를 세우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쪽이 검거된 범인이다. 증거랄 것도 없이 현장에서 바로 검거된 주제에 범인은 상당히 당당했다. 얼핏 영상만 봐서는 누가 누굴 추궁하는지 모를 지경이다.
음질이 좋지 않은 스피커에선 저속한 말과 함께 범인이 묶여있는 의자가 위협적으로 덜컹거리는 소리가 났다. 단장은 모욕적인 폭언 속에서도 인상 한 번 찌푸리지 않고 같은 질문을 기계처럼 되풀이했다.
「사건에 대해 더 하실 말씀 없습니까.」
「이 씨발, 창녀보다 못한 년이…」
「그 입 안 닥쳐!」
단장이 아닌 그의 뒤, 매직미러 밖에서 큰 소리가 났다. 정면에 고정되어 있던 그의 시선이 처음으로 돌아갔다.
「마스테마.」
「단장님…!」
「마이크 끄세요.」
대답이 없자 그가 한숨을 섞어 다시 명령했다. 끄세요. 작은 목소리로 수긍하는 대답이 나오고 이어 심문실이 다시 잠잠해졌다.
「사건에 대해 더 하실 말씀 없습니까.」
그가 고저 없는 목소리로 다시 한 번 물었다. 범인의 주장―크리스틴은 이후 ‘개소리’라고 평가했다―이 다시 한참을 이어지던 찰나, 그가 하, 허공에 비웃음을 흘렸다.
구식 영상의 노이즈 속에서 그 소리만은 선명히 스피커를 통해 들어왔다.
「―당신 섹스 실력이 좋아서 내가 그랬다고 생각합니까.」
「……!」
"……."
화면 안도, 화면 밖도 침묵이 스쳐지나갔다.
모두가 할 말을 잃고 눈을 깜빡이는데 그가 책상을 짚고 몸을 일으켰다.
「더 이상 들을 것도 없겠습니다. 범인 신변 검찰 측에 넘깁니다.」
이, 이…! 범인이 부들부들 떨리는 손가락으로 그를 삿대질했다. 큰 소리가 나오기 전에 매직미러 옆의 문이 열리고 제복을 입은 남자 둘이 들어와 범인을 자리에서 끌어냈다. 저항하는 범인을 책상에 내리찍는 다소 폭력적인 장면이 있었지만 수위가 아슬아슬 할 때 예의 단장이 중지 명령을 내렸다. 딱 법에 저촉되지 않을 만큼만 얻어맞은 범인이 화면 밖으로 끌려 나가며 영상은 종료되었다.
재생을 마친 영상이 마지막 화면에 멈췄다.
“……허.”
말없이 영상을 보고 있던 남자의 입에서 짧게 바람이 샜다. 마지막 순간 그는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었다.
범인을 대할 때와 마찬가지인 무심한 시선으로.
“마타 하리 경?”
“예?”
“실물이 열 배는 더 미인이시군요.”
“…누구십니까.”
무례하게 말을 걸어온 사람이 자리까지 빼고 앉자 데몬은 경계와 함께 불쾌한 표정을 드러냈다. 그러나 상대는 아랑곳 하지 않고 그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아, 일단 선물입니다.”
그가 마시던 에스프레소 잔 옆으로 새로운 음료수 컵이 밀어졌다. 그는 경계를 풀지 않으며 선물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기포가 올라오는 파란 레몬에이드 속에 조개 모양 색얼음이 띄워져 있고 음료 위에 한 스쿱 올려진 아이스크림엔 분홍 파라솔이 앙증맞게 꽂혀 있다. 제도 여학생 사이의 화제의 메뉴를 보며 데몬은 더더욱 표정을 찌푸렸다.
“누구시냐 물었습니다.” 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음, 이름은 팬텀이라 하고,”
자신을 소개한 남자는 빙긋 웃으며 주머니에서 플라스틱 카드케이스를 꺼냈다. 긴 목걸이 끈이 감긴 작은 물건이 데몬의 앞으로 내밀어졌다.
“검사입니다. 얼마 전 단장님이 범인 잡아오신 사건을 담당한.”
데몬은 내밀어진 검사증과 팬텀을 번갈아봤다. 팬텀이 수트 상의를 걷어 안쪽에 박힌 뱃지를 보였다. 손톱만한 크기의 금색 무지개가 조명을 받아 빛났다. 아, 데몬이 그제야 미심쩍은 시선을 거뒀다.
“실례했습니다. 11사단 단장 데몬입니다.”
특무대를 상징하는 제복 차림인 그에게 신분을 증명할 물건은 필요 없었다. 어깨에 새겨진 흰 날개장식 다섯 장이 단장이라는 지위 역시 말해주었다.
“단장님의 활약상은 익히 들었습니다. 국군 장병의 희생 아래 이 제국이 평화롭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제국 수호의 날개의 충심을 절절히 느낄 수 있던 사건이었습니다.”
“군에서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이후는 검사님의 활약을 기대하겠습니다.”
과장된 칭찬에도 데몬은 무덤덤하게 답했다.
군에 맡겨진 역할은 어디까지나 범인의 체포까지이고 이후 범인의 처우와 재판을 통해 범인의 형량을 결정하는 것은 사법부의 일이다. 범인은 오늘 오전 막 이송되어 왔다. 검찰청에 와서까지도 하도 시끄럽게 굴어 제 풀에 지칠 때까지 좀 두자며 적당히 빈 조사실에 넣어 놓고 온 참이었다. 그렇게 말하자 데몬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단장님의 노력에 누를 끼치지 않는 결과를 내도록 하겠습니다.”
“수고해 주십시오.”
“예, 재판까지 열심히 달려야지요.”
팬텀이 턱을 괴며 테이블 쪽으로 몸을 당겼다. 화사한 얼굴이 둥근 호선을 그렸다.
“그런 의미에서 잠시 시간 좀 내주실 수 있으십니까.”
아, 데몬이 짧게 소리를 냈다.
“제가 근무 중이라서요.”
“정식으로 참고인 소환을 할 수도 있지만 그러면 삭막한 조사실에서 만나야 합니다.”
팬텀이 과장되게 어깨를 으쓱였다.
“이런 미인과의 데이트는 화사한 카페나 분위기 있는 바에서 하고 싶은데 말이죠. 귀여운 레몬에이드도 마시면서.”
“…….”
데몬은 어색하게 시선을 옆으로 피했다. 반면에 팬텀은 구김살 없이 활짝 웃었다.
“이번 작전 포상으로 휴가랑 반차 잔뜩 나오신 거 압니다. 하나만 써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처음부터 이렇게 하실 생각으로 오셨군요.”
“헌팅보단 데이트 신청으로 봐 주시면 기쁘겠습니다.”
잠시 상대방을 바라보던 데몬은 이내 곧 핸드폰을 들어 전화를 걸었다. ‘……네, 저 지금 퇴근합니다. 반차 씁니다. 아……그래주시면 감사합니다. 아니, 지금은 말고. 한 시간 정도 뒤에. 네. 수고하십시오.’ 그가 전화 상대와 대화하는 시종일관 팬텀은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
짧게 통화를 마친 데몬은 짧은 한숨을 내쉬며 긴 머리카락을 어깨 뒤로 넘겼다. 영상에서 흑발로 보였던 머리카락은 짙은 붉은색이었다. 온통 새카만 제복 위에 얹어진 머리카락이 음지에 핀 꽃 같은 묘한 조화를 이루었다. 데몬이 아이스크림이 반쯤 녹은 레몬에이드를 한 모금 마신 뒤 내려놨다. 도저히 그가 마시던 쓴 커피와는 함께 할 수 없는 맛이었다. 파란 수면 위로 탄산 기포가 보글보글 올라왔다.
대륙의 태반을 지배하는 제국 에레브의 황성은 거대한 부유섬 위에 지어져 있다. 대륙의 동쪽 중앙, 지면에서 10m가량 떨어진 곳에서 하늘 높이 지어진 황성 주변으로 제도, 퀸즈 로드가 형성되어 있다.
하늘을 상징하는 제국인 만큼, 나라에서 운영하는 대부분의 기관은 천공의 존재를 상징으로 삼는다. 황제 일가는 태양, 의회는 달, 조국을 지키는 제국군은 제복에 하늘을 지키는 수호의 날개를 새겼다.
그리고 법원을 비롯한 사법부의 상징은 관용과 처벌의 의미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 무지개다. 데몬의 앞의 남자가 보여준 검사 뱃지가 그 예시였다.
“저도 제국의 정의를 구현하는 무지개의 한 축으로써 범인을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구석진 자리에 앉아 있는데도 간간히 주변의 시선이 느껴졌다. 데몬은 정면의 남자 때문이라고 확신했다. 뜬금없이 접근한 그를 보며 수상한 세력이 아닌 리포터나 아나운서 정도를 먼저 떠올린 것은 남자의 외모 탓이 컸다. 그러나 그는 마이크 대신 이질적인 소품, 검사증을 내밀었다. 아이돌 같은 목소리로 속삭인 건 음원 인기 순위가 아닌 법률 용어였다.
“피해자 한 사람당 8년씩, 최소 160년 형을 구형할까 합니다.”
무기징역의 다른 말이었다. 하긴, 사형은 사치지. 데몬은 레몬에이드 대신 마시던 에스프레소를 들고 고개를 끄덕였다.
“정당하십니다.”
“그 자의 전 재산을 털어 피해자들에게 균등하게 나눠 줄 생각입니다.”
제국 법률상 특수 범죄의 피해자는 가해자의 재산에서 일정 비율의 보상을 받게 되어 있다. 데몬은 며칠 전 잠입했던 거대한 저택을 떠올렸다.
“아주 훌륭하십니다.”
모르긴 해도 보상금의 액수는 꽤 될 것이다. 정신적 상처를 보상할 수는 없겠지만.
“제가 해야 할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이 당연한 일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가엾은 피해자들을 위해 어제부터 범인의 지갑을 열심히 털고 있는데,”
팬텀이 낮아진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저택을 제외한 총 자산이 레몬에이드 한 잔 값도 안 되더군요.”
“예?”
“경찰 측에서 꾸준히 조사하고 있는데 집 안에 딱히 값나가는 물건들도 없고.”
데몬은 눈을 깜빡였다. 쉽사리 이해가 가지 않는 이야기였다. 저택을 포함한 상당한 액수의 유산에, 수개월간 인신매매로 꽤 돈을 벌었다 들었는데 어떻게 자산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는 거지. 그 해답은 팬텀이 곧 알려주었다.
“숨겨진 현물이겠지요. 보석, 금, ……아니면 마약. 손바닥만 한 게 수십억의 가치를 하는 것은 넘쳐나니까.”
“…그렇군요…….”
뉴스나 영화에서 비슷한 내용을 본 것도 같다. 정치인의 비리라던가, 기업의 불법 자금 유통이라던가 하는 내용으로. 정·재계와 관련한 일엔 문외한인 그에겐 생소한 이야기였다.
“그래서 단장님께 묻고 싶었습니다. 특수한 형태로 잠입하셨고, 범인과 모종의 접촉도 있었으니 혹시나 알고 계신 게 있나 해서요.”
데몬은 기억을 더듬었다. 그러나 이내 곧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오래 잠입한 게 아니라 저도 내부를 다 파악하진 못했습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저택에 들어간 후에 자유롭게 돌아다닐 처지도 못 되었습니다. 지금으로선 딱히 생각나는 바가 없습니다.”
“그렇습니까.”
으음… 팬텀이 뒷머리를 긁적였다. ‘죄송합니다.’ 데몬이 덧붙였다. 다시 데몬과 눈을 마주친 팬텀은 웃으며 손을 저었다.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물어 본 겁니다. 큰 기대 하지 않았어요. 단장님께서 전혀 미안해하실 필요 없는 일입니다.”
“예…….”
“아, 그래도 나중에 뭔가 떠오르면 연락 주시겠어요?”
팬텀이 품에서 명함을 꺼내 내밀었다. 다른 사람의 손에 넘어간 명함은 아주 잠시 뒤 다시 주인에게 돌아왔다. 팬텀이 눈을 깜빡였다.
“외운 겁니까?”
“네. 아……, 직업상 생긴 습관입니다. 다시 주십시오.”
“아닙니다. 괜히 특무대가 아니군요. 기왕 이렇게 된 거 오래 기억해 주세요.”
“…아는 게 있다면 꼭 연락드리겠습니다.”
“예,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잠시 침묵이 흘렀다. 팬텀의 손끝이 유리잔을 통, 통 두드렸다. 잠시 뒤에 긴 한숨이 레몬에이드 위에 물결을 그렸다. 팬텀은 두 손을 깍지 껴 모으고 그 위에 머리를 기댔다.
“다음은, 아, 사실 이게 본론인데. 서로 굉장히 불편할 화젭니다만.”
가지런한 앞머리가 헤집어지며 아으, 하고 팬텀이 괴로운 소리를 냈다. 이전까지 술술 지나가던 대화와는 달리 곤란해 하는 기색이 보였다. …뭐길래. 데몬도 덩달아 불안해졌다. 머뭇거리던 팬텀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단장님은 보상 못 받으실 것 같습니다. 작전상 원치 않는 관계를 가졌고 그 새… 아니 범인 성격상 다소 폭력적인 정사가 있었을 것으로 예상은 가지만 일단 단장님이 먼저 접근한 게 맞고, 또 저항을 했는데 강제로 추행했다는 증거도 없습니다. ……거기다 군에서 보낸 심문 영상에 단장님 발언 때문에 강간죄가 거의 성립이 안 됩니다. 그러니까, 단장님은 피해자 명단에 올라가기 어렵습니다.”
“아아. 괜찮습니다.”
긴 설명에 비해 데몬의 대답은 간결했고, 또 단순했다. 허무한 답변을 들은 팬텀이 눈을 깜빡였다.
“정말입니까?”
“애초에 보상을 바라고 한 일도 아니고 피해자라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임무였을 뿐입니다.”
“오……, 솔직히 멱살 잡힐 각오 정도는 하고 왔습니다만.”
“설마요. 민간인 폭행하면 영창 갑니다. 검사님이야말로 검사님께서 미안해하실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아까 그가 건넸던 말이 명함처럼 되돌아왔다. 흥미로운 시선으로 상대를 보던 팬텀의 얼굴에 처음보다 짙어진 미소가 떠올랐다. 대화가 오가는 동안 거의 손대지 않은 레몬에이드에 얼음이 녹은 물이 섞여 색이 옅어졌다. 멀리 보이는 부유섬 주변 하늘을 닮은 색으로 변했다. 데몬이 손목을 보고 시간을 확인했다.
“하실 말씀은 끝나신 겁니까?”
“예. 일단 용건은 여기까지입니다.”
“그럼 일어나도 되겠습니까? 밖에 마중 온 사람이 있어서요.”
“아, 예. 시간 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자리를 정리한 두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데몬은 책상을 짚고 일어나 벽에 기대진 목발을 들었다. 그리고 한쪽 손으로 목발을 짚은 채 절뚝이는 걸음걸이로 걸어 나갔다.
다리를 다쳤어? 팬텀은 속으로 놀랐다. 앉아 있을 때는 겉으로 부상의 흔적이 없어 전혀 몰랐는데, 한 쪽 다리를 거의 쓰지 못했다. 땅에 다리가 닿긴 했지만 무릎이 굽혀지지가 않았다.
“어쩌다 그랬습니까?”
앞서 가던 데몬이 뒤를 돌았다. 머리카락 색과 같은 붉은 속눈썹이 깜빡였다. 그는 흑백화면 너머 범인을 심문할 때와 같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술 취해 계단에서 넘어졌습니다.”
"……."
“계단 스무 개 정도를 무릎으로 내려왔습니다.”
아, 저런. 팬텀은 괜히 멀쩡한 무릎이 시큰해졌다.
“아팠겠습니다. 많이.”
“네.”
깔끔한 인상의 군인은 의외로 주사가 심한 모양이다. 쿠당탕탕 하는 소리가 절로 들렸다. 왠지 당황하는 건 주변 뿐, 본인은 비명 한 점 없이 무덤덤하게 굴렀을 것만 같다.
“저라면 울었을 것 같군요.”
“군인은 이런 일로 울지 않습니다.”
단호한 대답이었다. 피가 뚝뚝 떨어져도 저 표정으로 괜찮다 할 것 같단 말이지. 팬텀이 짧은 웃음소리를 냈다.
“그래도 보기보다 덤벙거리시나봅니다.”
장난스러운 질문에 적당한 대꾸를 기다리며 팬텀은 옆 사람을 돌아봤다. 불편한 그의 걸음걸이에 맞춰 팬텀이 보폭을 좁혀 속도를 맞춘 참이었다. 흰 뺨이 작게 움직였다.
“……어.”
그는 저도 모르게 작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시종일관 무표정했던 그의 얼굴에 웃음이 올라와 있었다.
픽 웃는 소리가 공기방울처럼 스쳐지나갔다.
“네. 그런 편입니다.”
데몬이 시선을 내리며 미소지었다. 얇은 뺨에 작은 보조개가 패였다.
폭, 수면 위로 올라와 귓가에 닿은 기포가 파편을 남기며 터졌다.
다리가 불편한 단장을 데리러 온 차는 카페 바로 앞에 대어져 있었다. 그가 조수석에 올라타는 것으로 두 사람의 짧은 만남은 마무리가 되었다. 목발을 뒷좌석으로 넘긴 데몬은 안전벨트를 당겨 맸다. 운전석에 앉은 이는 데몬이 차에 오르는 순간부터 볼을 부풀렸다. 할 말이 많은 모양이다.
“몸도 성치 않으면서 어딜 그렇게 돌아다니시는 거예요. 정말.”
“미안합니다. 자제하겠습니다.”
순순히 사과하는 쪽이 낫다는 것은 그가 부하 마스테마와 함께 지낸 몇 년 사이 얻은 귀중한 경험이었다. 여기서 ‘별거 아닙니다.’, ‘괜찮습니다.’와 같은 답변을 내놓는다면 전치 몇 주니,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한다느니 하는 더한 잔소리가 쏟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잘못을 시인하고 원하는 답을 들려주면 그 이상의 질책은 없다. 그는 참 군인답지 않은 무른 성격이라고 생각했다.
“사택으로 모셔다 드리면 되죠?”
“네. 부탁드립니다.”
차가 도로 사이를 부드럽게 가속했다. 기다리는 시간 동안 데몬은 적당히 대화를 나누며 핸드폰을 넘겨봤다.
여전히 검색 포탈마다 ‘저택 납치 감금 사건’이 순위권에 올라온 채 내려가지 않았다. 다른 외진 곳도 아닌 제국의 중앙, 제도에서 스무 명이나 납치된 사건은 평화로운 제국민 사이에 커다란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데몬이 저택에서 구출한 열세 명 외에, 해외로 팔려간 일곱 명의 소재가 파악돼 현재 다시 국내로 불러들여지고 있다는 기사가 보였다. 그 휘하의 단원 수십 명이 무박의 일정으로 국경선을 오간 결과였으나 상세한 내용은 민간에 공개되지 않았다.
그리고 기사마다 심심치 않게 올라와 있는 이름이 ‘마타 하리 경’, 별명이지만 데몬 자신이었다.
사창가와 민간의 협력을 얻은 잠입이었던지라 언론을 통제해도 작전에 대한 소문이 새어나갔다. 거기에 과장이 부풀려져 데몬은 치명적인 외모를 가진 세기의 스파이로 포장이 되었다. 베일에 감싸진 황제 직속 부대 소속이라는 것도 한 몫 했다.
사건의 마무리로 황실 대변인이 ‘원활한 작전 수행을 위해 외모와 실력 모두 출중한 요원의 허니 트랩이 있었습니다.’라고 기자회견에서 당당히 선언했고―누구의 짓인지는 쉽게 예상이 갔다― 데몬은 TV 앞에서 붕대를 감다 말고 마른세수를 했다. 옆에서 사관학교에 다니는 동생이 형, 그 사람 제국군 소속이라는데 누군지 알아? 끝장나게 예쁜가봐. 하고 묻는 말을 애써 모른척했다.
마스테마가 굳어있는 데몬의 표정과 핸드폰 위의 내용을 흘끔 보고 아하하 어색한 웃음을 얹었다. 그는 기사 몇 개를 더 넘겼다. 그러다 가장 최근 기사에 시선이 멈췄다.
「검찰청, 피의자 조사 착수.」
첨부된 사진엔 검찰청을 배경으로 남녀 두 사람이 찍혀 있었다. 조금 전까지 마주보고 있던 사람이 날카로운 인상의 여성과 함께 기자들 사이를 지나가는 사진이었다. 아래에 친절하게 설명이 덧붙여졌다.
「▲담당 검사 팬텀(좌), 크리스틴(우)」
“…진짜 안 어울리네.”
데몬은 아까 말하지 못한 솔직한 감상을 중얼거렸다. 몸에 딱 맞는 단정한 슈트와 감색 넥타이는 그의 귀족적인 외모를 한껏 살려주었지만 어쩐지 전체적으로 보면 이질감이 느껴졌다.
톡톡 액정을 두드리자 화면이 그의 모습으로 가득 찼다가 작아지기를 반복했다. 그의 머리부터 허리 아래까지가 화면에 들어오도록 한 뒤 손바닥으로 얼굴 아래를 가렸다. 채도 높은 금발과 푸른 눈동자는,
‘레몬에이드.’
반대로 목 위를 가렸다. 몸에 딱 맞춰 떨어진 정장 차림은,
‘에스프레소.’
아, 이거구나. 데몬은 카페 테이블 위의 친하지 않았던 두 음료수와 자신을 바라보며 빙글빙글 웃던 남자를 떠올렸다. 레몬에이드, 그리고 에스프레소였다.
───
직접적인 장면이 아니라 단어 필터링을 안했는데 괜찮을지 모르겠네요 ;ㅅ;